[스크랩] 지리하고 힘든, 그래서 기억에 남는 4차
이틀을 바지런히 걸어도 버스로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길이라는 생각에 그간 걸어온 길의 양을 과소평가하고 있었습니다. 3차까지 걸은 길이 제법 됩니다. 이제는 금요일 밤, 숙소에 도착하는 시간이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첫 기행시 숙소인 태백휴양림에 새벽 2시 넘어 도착했었는데... 격세지감입니다. 숙소인 동강리버빌에 12시가 채 안되어 도착합니다. 흙내음이 쏴하니 밀려옵니다. 반가움, 그리움, 애틋함 등등의 감정이 연달아 몰려옵니다. 흙냄새에 얽힌 특별한 추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구요. 흙은 인간과 말초신경으로 연결되어 있나 봅니다.
섭세입니다. 지난 3차 기행시 문산나루부터 래프팅을 하며 도착한 곳입니다. 덕분에 다리가 호강했었죠~~. 출발준비 하느라 새벽이 부산합니다. 축제 직전의 들뜸, 흥분, 기대가 넘쳐납니다. 산나물님이 준비한 지도를 보며 대략적인 감을 잡습니다. 이런저런 주의사항도 아주 많아집니다. 이제부터는 거의 도로랍니다. 차도 많아질 거라고 합니다.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모임이지만, 열심히 주의사항 숙지합니다. 그리고 출발. 동강의 끝자락 구간입니다. 이른 아침 공기가 신선합니다. 폐 속 깊은 곳까지 신선함을 집어넣으며 여유롭게 걷습니다.
오르막길이 나타납니다. 휘도는 강을 따라 길 역시 휘돕니다. 제법 긴 오르막이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습니다. 걷기 시작한지 이제 1시간 반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오릅니다. 반대쪽 길에서는 터널을 뚫고 있습니다. 여기 살지 않는 제가 불필요해 보이는 터널을 뚫는다고 눈살 찌푸릴 처지는 아닙니다만, 어쨌든 지금 길도 그다지 크게 도는 길이 아닙니다. 더구나 차량 통행도 많을 성 싶지 않습니다. 개발 제일주의의 현장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우리는 언제쯤에나 개발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한강을 따라 걸으며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이란 무엇일까요? 물리적인 면을 배제한다면 시간은 경험으로 치환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이틀을 열심히 걸으면 자동차로 채 한 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를 걷습니다. 자동차를 이용하여 절약한 이틀여의 시간/경험들은 대부분 그냥 잊혀 집니다. 자동차를 타고 움직인 그 1시간의 경험도 바로 잊혀 집니다. 반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은 이틀은 온전히 몸에 새겨집니다. 걸음뿐만 아니라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까지 몽땅 다요. 어떤 게 시간을 길게, 잘 쓴 걸까요? 문명의 이기라는 것들이 사실은 이기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옛사람들보다 더 잘 살고 있는 것일까요? 더 많은 것을 공부하고, 경험하고, 아는 것이 사실일까요? 진보/발전하고 있는 것일까요? 진보/발전하면 인간은 행복해지는 걸까요? 불필요해 보이는 터널 공사 현장을 지나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듭니다.
강 저 쪽으로는 저새마을이 보입니다. 새 한 마리가 공중을 선회합니다. 역시 저 새 마을입니다. 그다지 크지 않은 마을입니다만, 깔끔하고 풍광도 아름다워 눌러앉아 살아 보고픈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마을입니다. 강가 마을에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나그네의 상상만큼이나 유유자적하고 여유롭고 낭만적일까요?
오르막길을 다 올랐습니다. 이제 내리막길입니다. 고층건물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겁니다. 영월읍입니다. 한쪽으로는 도회지의 번화함이, 한쪽으로는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팻말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바로 위 동강에서는 래프팅이 한창인데, 그 아래인 이곳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상수원 보호구역 팻말을 바라보며 강물에 발을 담급니다. 상수원 보호구역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이것저것 적혀 있습니다. 세탁, 목욕 등등... 위반시 2년이하의 징역, 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왜 몸으로 떼우는 것이 더 가혹한지 모르겠습니다...) 땀에 절은 손수건은 빨고, 피곤에 절은 발은 강물에 담갔는데, 이 정도도 위반사항에 해당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뚝방길로 접어듭니다. 건너편 강변으로는 천막이 쫙 펼쳐져 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동강축제였습니다. 지자체 제도가 실시되면서 축제가 엄청 늘어났는데, 이 역시 그 일환인가 봅니다. 우리 입장에서야 동강의 끝자락이지만, 영월읍 입장에서야 여기서부터 동강... 일 겁니다. 어느 정도 프리미엄이 있는 축제일 듯 한데 썰렁해 보입니다. 아직 시간이 일러서 그런가 보다 합니다. 어차피 강 건너 일입니다. 다시 걷자니 저 멀리 서강이 보입니다. 드디어 동강과 서강이 만나 몸을 섞습니다. 검룡소에서 이곳까지 크고 작은 물줄기를 받아낸 터입니다. 이제 거의 자기 덩치와 맞먹는 강을 또 받아냅니다. 그리고 환골탈태합니다. 이제 남한강입니다.
강폭이 아주 넓습니다. 깊이도 있어 보입니다. 무엇이든 커다란 것은 범접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길이 끊기면 건너기도 했던 강입니다. 이제는 건널 생각은 하지도 못합니다. 강 따라 나 있는 길도 제법 멉니다. 그동안 걷던 그다지 크지 않았던 한강이 그리워집니다.
계족산 정조대왕 태실을 관람합니다. 문외한이 보기에도 명당인 것 같습니다. 태실의 이론적 배경은 동기감응론이라고 합니다. 명당에 태를 묻으면 좋은 지기를 받아 태의 주인이 무병장수한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나라든 사람이든 지금을 영원하게 하기 위해 좋다는 것은 다 하는 듯합니다. 그래도 세상사는 돌고 도는 것을 보니 참 다행, 이다 싶습니다.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음식점으로 이동합니다. 음식보다 시원함에 대한 갈증이 더 큽니다. 아주아주 시원한 곳에서 밥 먹고, 커피도 마시고, 낮잠도 잡니다. 행복한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식당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컸던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에어콘 비용이 솔찬하니 들었을 것 같습니다.
오후 걷기는 더 만만찮을 겁니다. 기온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만 습도가 꽤 높습니다. 은근히 갈증이 나는 날씨입니다. 물을 2병이나 챙겼습니다. 다시 도로를 걷습니다. 사람이 걸을 거라는 고려는 전혀 없이 만든 도로입니다. 갓길이 거의 없습니다. 양쪽 차선 모두 차들이 많이 지나다닙니다. 이따금 덤프트럭도 내달립니다. 덤프트럭이 한 번 지나가면 몸이 휘청입니다. 도보자에게는 최악의 길입니다. 최대한 갓길로, 한 줄로 줄을 서서 갑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늘도 없습니다. 얼굴이 열을 받을 대로 받아 붉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주황색 하늘고속관광. 반가운 마음에 내달립니다. 고씨동굴앞입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기철호 기사님. 콜라에 맥주에... 콜라가 이렇게 맛있는 것인줄 몰랐습니다. 신선생님이 콜라 좋아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길은 또한 생로병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입니다. 유난히 많은 죽음을 목격합니다. 지렁이야 예사구, 뱀, 나비, 새까지요. 죽음의 양상 또한 다양합니다. 자연사부터 사고사까지... 그러고 보니 길 위에서 생과 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존재는 사람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에 의미 부여하고 의식을 치르는 존재 역시두요. 어쩌면 의미 부여해서가 아니라 죽음에 빨리 눈 감기 위해서 의식을 치르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죽음은 생명체뿐이 아닙니다. 필요해서 지었다가는 필요가 없어지니 그냥 방치해버린 건물도 눈에 들어옵니다. 지을 때에는 분명 허가를 받았을 터인데요. 마무리도 확실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폐허된 건물, 불필요해진 댐이 흉물스럽습니다.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지납니다. 충청북도의 마스코트는 신라시대 복색입니다. 충청북도의 가장 찬란했던 역사는 1,000년전 신라시대였음을 반증합니다. 천년전 영화는 뭐 별 것도 아닙니다. 남북이 만나는 중간지점이라는 의미의 중원지방이었습니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아직도 로마시대를 살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보며 복잡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탈리아는 로마시대 이후 계속 도시국가 상태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힘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그래서 무솔리니에 더 열광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활고개만 넘으면 오늘의 여정은 끝납니다. 이 길이 아주 힘들다고 신선생님이 계속 엄포를 놓습니다. 어쩌겠습니까? 가야죠. 루드베끼아-풍경님에게 세 번이나 물어 간신히 외웠습니다-가 화려하게 피어 있습니다. 이번 기행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산딸기도 간간히 눈에 띕니다. 꽃도 보고 뽕도 따며 걷자니 금방 활고개 정상입니다. 이게 끝이에요... 했더니 예전에는 워낙 지쳐서 힘들었나 보다, 하십니다. 역시 컨디션이 중요합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영원한 봄, 영춘입니다. 영원히 봄에 머물 수 있으면 행복할까요? 어쨌든 영원한 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영춘을 다녀오고 나서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와 한영애의 봄날은 간다를 들어 보았습니다. 발라드 버전이든, 트로트 버전이든 봄은 가슴을 아리게 하거든요. 영춘교에 조각되어 있는 마늘이 눈에 들어 옵니다. 영춘의 힘은 마늘에서 비롯되나 봅니다. 마늘은 곰을 사람으로도 만들고, 영원히 봄에 머물게도 해주나 봅니다.
숙소는 경로당이었습니다. 원래 소백산전통문화학교에서 자기로 되어 있었는데, 일정이 겹쳤나 봅니다. 덕분에 숙소로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의 범위가 한층 넓어졌습니다. 시골마을 경로당도 나그네에게는 유용한 쉼터입니다. 소백산전통문화체험학교는 폐교를 이용해서 만든 시설입니다. 신선생님도 예전에 폐교를 하나 내줄터이니 전통문화관련 사업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아마 그때 그 제안 받아들였으면 그거에 매여서 꼼짝달짝 못했을 거라고, 안하길 천만다행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가진 것이 없어야 자유롭습니다.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도 욕심에서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삶의 마지막 단계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진즉부터 我號를 撤手라고 지어놓고 삶의 마지막 단계(정신적인 면에서 입니다)로 진입하려고 합니다만, 마음뿐입니다. 자력으로 안되니 이름이라도 많이 불러주세요^^.
바로 머리 위를 날아가는 새가 보입니다. 날개는 엄청 큰 데 몸통은 가늘디 가늡니다. 신진대사에 필요한 기본기관이 다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날개는 족히 4~50센티미터는 되어 보이는데 몸통은 제 손가락마디정도의 굵기입니다. 충격이었습니다. 높이 나는 새는 뼛속까지도 비워낸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습니다. 자신의 삶의 목적에 필요한 것만 갖는다는 것, 정말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날이 흐려 온달산성은 포기합니다. 이왕 일어난 것, 그냥 내쳐 걷습니다. 새벽 6시입니다. 곳곳에 업종은 달라도 상호는 온달인 간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온달은 행복했을까요? 일국의 부마가 되어 장수가 되어 싸우다 죽는 생이 좋은 건지, 그냥 바보 온달로 계속 살았던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온달이 공명심이 있었다면 모르겠지만요. 바보로 칭해졌던 것을 보며 그랬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공주에게 간택된 후 자격지심에 더 용맹스러워만 했을 온달이 상상됩니다. 저라면 바보 온달로 살겠습니다. 혹시 모르죠. 평강공주를 정말 사랑했다면야, 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게 사람이란 존재 아니겠습니까?
어제와는 달리 한적한 길 입니다. 국도와 지방도의 차이가 큽니다. 앞으로
차로 여행할 일이 생기면 지방도로로만 다닐 겁니다. 한적하고 강과도 훨씬 가까이 있습니다. 길 위에서 찰밥으로 아침을 먹습니다. 그리고 또 걷습니다. 강가 밭이 넓습니다. 담배, 수박, 코스모스까지 잔뜩 심어 놓았습니다. 담배는 한참 잎을 따고 있는 중입니다. 저 넓은 잎을 말려서 잘게 썰어서 담배를 만드는 거였습니다. 연초라는 단어를 확실하게 이해했습니다. 담배는 몸에 해로운 것, 피면 안좋은 것이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막상 연초 거두는 작업을 하는 현장을 보니 누군가에게는 밥줄이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몸에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 담배 많이 피우세요. 담배재배 농가에 힘이 되게요~~. 무거운 몸 주체 못하고 있는 수박은 건드릴 생각도 못했습니다. 요즘은 서리가 절도죄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가곡면을 지나는데, ‘바르게 살자’라는 비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사는 건지 무지 궁금했는데, 바르게살기운동 가곡면위원회에 한 번 물어봐야겠습니다. 바르다, 바르게 산다 라는 것, 개인윤리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국가윤리로 몰아간 과거를 기억나게 합니다. 필시 아직도 이런 류의 위원회가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만들기는 해도 없애지는 않는 게 관의 속성이거든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철저하게 개인으로 살기,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그래서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거구요. 홍수비도 있습니다. 1990년 9월 9일에 있었던 홍수를 기념하는 비입니다. 저도 그 날을, 그때 내리던 비를 기억합니다.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태어난 날이거든요. 제게는 출산의 고통을 위로해 준 고마운 비였습니다. 그 비가 이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적인 상황으로, 심지어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사람은 역시 뭘 모르는 존재입니다.
이 고개만 올라가면 된다고 합니다. 까마득합니다. 어제 무리한 일정 탓에 모두들 힘든 기색이 완연합니다. 저 건너편으로 훨씬 멋있는 길이, 강과 훨씬 가깝고, 경사도 없는 길이 펼쳐져 있습니다. 왜 저 곳으로 가지 않을까? 다리 두 번만 건너면 될 것 같은데... 길이 없다고 합니다. 보이는 것과는 달리 중간에 길이 끊긴다고 하네요. 도저히 이해가 안갔지만, 확인할 엄두는 나지 않습니다. 도담삼봉 직전 고개에서 이번 일정을 끝냅니다. 고개마루 쉼터에서 끝나자마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지난달에도 걸을 때는 비 그치고, 쉴 때는 비 내리고 그러더니요. 하늘이 우리를 많이 도와줍니다.
점심 식사후 석문을 가려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일행에 뒤쳐져서 도담삼봉을 이리저리 감상하고 있는데 천둥번개까지 칩니다. 소심해져서 얼른 버스에 올라탑니다. 남들도 그러려니 했는데, 아무도 오지 않더군요. 모두들 그 비를 맞으며, 이리저리 번개가 내리꽂히고 있는 사이사이로 무사히 잘 다녀왔더군요. 그 날씨에서만 볼 수 있었을 장관에, 무용담까지 겹쳐서 모두들 흥분의 도가닙니다. 선택의 순간에서는 ‘일단 질러라’가 정답인 것 같습니다.
법흥사도 다녀왔습니다. 소나무 숲이아주 좋다고 들었습니다만,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입니다. 한 2백념쯤 된 송림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걸어서 오르내렸습니다. 적멸보궁의 진신사리함이 통유리로 된 창문 바로 앞에 놓여 있더군요. 함이야 당연히 비어 있겠지만, 어둠컴컴한 곳에 꼭꼭 숨겨놓은 것만 보다가 환한 통유리 앞에 있는 진신사리함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함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 신도에게 부처님 정기가 더 많이 뻗치는 것 같습니다. 여행자 수칙. 화장실은 눈에 띄면 무조건 갈 것. 화장실로 향하다 뜻밖의 현장을 발견합니다. 여자화장실이 남자 화장실의 4배쯤 됩니다. 기회의 평등에서 결과의 평등으로, 이른바 성인지적 관점에 의한 정책의 결실입니다. 가장 보수적인 종교계에서 이렇게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다니요. 다시 생각해 보니 성인지적 관점이 아닌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여성신도가 많지 않겠습니까? 신도수 비례대로 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신선하죠? 어떤 사찰에서도 이런 모습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서울시에서 요즘 한참 여성이 행복한 도시 만들기를 하고 있던데, 서울시 홈페이지에 법흥사 화장실 사진을 올릴까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