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별 소년이 풀어놓는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지다
(2009년 2월 21일 길담서원 새해 첫 백야제에 현범이와 함께 참가하다)
백야제때 제가 좀 독특했다 싶은 점은 아들을 데리고 참석한 거라는 걸 것 같습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중2 아들은 백야제에서 어떤 느낌을 가졌었는지를 알려드리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아 글 올립니다.
중2 아들(현범) 데리고 백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만,
현범이 끝장을 보자, 고 하는 바람에 모자가 하얗게 밤을 지새웠네요.
새벽에 버스타고 집에 돌아가며 흥분해서 이런저런 소감을 이야기하는 현범이 얼마나 기특하던지요..
현범이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선생님 말하실 때 2번인가 3번인가 전율을 느꼈어, 입니다.
(예비 중2의 표현으로는 좀 예술적이죠^*~~)
내게 주어진 삶이 이제는 10년정도 남은 것 같다고 말씀하실 때는 '불쌍했다'고 하구요.
현범이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우기는 하지만,
그런 자리에 가려고 할까 반신반의하며, 갈래? 했더니
순순히 간다고 하더군요.
역시 난 좋은 엄마야, 하며 냉큼 손잡고 집을 나섰습니다.
애 키워 본 분은 아시겠지만,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부모를 따라나서지 않쟎아요?
얘가 왠일이야, 싶으면서도 이게 다 평소때 내가 잘해서 그런거야...하며 므흣해 했더랩니다.
사진과 곁들여 들려주시는 이야기,
박준희 선생님의 춤,
베토벤 심포니 17번 템페스트,
많은 분들의 품앗이로 정성스럽게 준비한 주먹밥.
(뽀스띠노님이 노련한 주부를 원한다고 offer를 보냈는데,
현범이 데려가야 하는지라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글고, 저 노련한 주부 아니랍니다ㅠㅠ;;; 앞으로 되어 볼려구요)
그리고 본격적으로 풀려나온 선생님의 삶 이야기.
어느 것 하나 놓칠 것이 없었죠.
특히 한참 감수성 예민한 중2에게는요.
박준희 선생님의 춤에 대해서는 춤출 때 사람이 그렇게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다고 하구요.
클래식도 학교에서 들을 때는 좋은 줄 몰랐는데, 길담에서 들으니 너무 좋았다고 하네요.
압권은 역시 선생님의 삶의 이야기였죠.
전율을 느꼈다,고 표현할 정도였으니까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가슴으로 들려주시는 이야기, 가슴으로 듣고 있자니
10시간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어요.
저는 선생님의 말씀중 두 번의 귀향을 했다, 라는 부분이 가장 크게 와닿았습니다.
첫 번째 귀향은 실패했지만, 두 번째 귀향은 성공했다, 라고 자평하셨죠.
감옥에서 세상으로 나온 첫 번째 귀향.
13년 7개월의 감옥생활의 버팀목이었을 고향이,
그리던, 상상했던 그 고향이 아니었을 때, 그 심정이 어땠을까요?
더구나 꿈을 펼칠 기회도 채 가져보지 못했었기에 귀향이 더 들떴었을 터인데요.
두 번째 귀향은 미국 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다시 돌아오신 때라고 하십니다.
두 번째 귀향이라고 쉬웠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명숙 전총리께서 정치활동을 시작하셨을 터이니까요.
정치인 아내를 둔 문제아(?) 남편의 처지가 어땠을 지는 말 할 필요도 없을 듯 합니다.
그래도 성공이라고 자평하시는 것은
사회의 대안을 찾는 걸음을 새로이 시작하셔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자마자 제일 처음 한 일이
감옥 창살을 철봉삼아 운동을 하신 거라고 하셨죠?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힘이 아무에게나 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의 그 힘이 뭔가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아직도 계속 눈에 밟히네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목말라 하며
고아원 화장실에서 밤새 책을 보는 9살 소년의 모습이...
감방에서 담배 은박지로 불 돋혀가며 밤새워 책을 보는 30대 청년의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