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친 생각들

[단상]간길과 가지않은 길

sunny 존재 자체가 복음 2004. 9. 6. 15:19
 

장이모 감독의 영화 ‘인생’을 보면서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과 대비가 됐다. ‘인생’이 살면서 선택한 것들에 대한 회한을 이야기하고 있는 반면에 ‘가지 않은 길’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지. 간 길과 가지 않은 길. 어떤 것이 더 큰 회한일까?


‘인생’에서 주인공은 살면서 이러저러한 남루한(!) 선택, 의지에 의한 선택이 아닌, 을 하게 되지. 시간이 흐른 후, “그때 그러지만 않았더라도...” 하는 회한을 곱씹는 남편 혹은 아내를 아내 혹은 남편이 “인생은 원래 그런 거야”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주는 장면이 내 기억으로는 두 번쯤 나온 것 같다. 결국 감독이 보는 인생이란 이러저러한 선택을 통해 간 길에 대한 회한을 가슴속 깊이 감싸안는 것이다.


반면 ‘가지 않은 길’은 한 길을 후일로 기약하며 나머지 한 길을 선택한 자의 아쉬움이다. 여기에서는 선택한 길에서 성공한, 그래서 가지 않은 길에까지 생각이 미친 여유와 패기와 욕심이 묻어난다. 인생에서 당연히 감수해야 할 기회비용까지 인정치 못하는 그 속좁음이 무서울 정도다. 이 두 차이가 오늘날 동.서양의 현주소를 가름짓는 것일까?


어쩌면 시점의 문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인생’이 황혼기에 바라본 인생이라면 ‘가지 않은 길’은 아마 청년의 시점에서 바라본 인생이 아닐까? 시기별로 인생에 대한 태도가 같을 리가 없을 테니. 중년이후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를 고민하는 시기


사람들은 인생에서 선택한 것, 내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할 수밖에 없게끔 강요된 것들로 인해 몸살을 앓는다. 나의 경우 어려운 일 생겼을 때 매듭의 끈을 상대에게 넘기는 천성 탓에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은 항상 강요된 것이다. 그래서 더 심한 몸살을 앓는 걸까? 몸살 끝에 얻을 결론은 선택의 기로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라가 아닐까 싶다. 이는 노자의 무위사상과 연결될 터... 나는 노자의 궤를 따라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