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는 벌써 봄이더군요.
일요일 아침, 비인 듯, 안개인 듯한 가랑비를 맞으며
세심원에서 문수사까지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나무들에게서 간질이는 소리가 나더군요.
봄이구, 아침이구, 비가 와서 나무들이 좀이 쑤셔하는 것 같았습니다.
덩달아 저두 간질간질한 느낌에, 이 느낌을 어떻게 발산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습니다.
역시 '봄'은 여자의 계절인가 봅니다^*^.
이번 기행의 백미는 고봉 기대승 고택이었습니다.
단아하면서 품격이 있는, 고졸한 분위기의 이조 백자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고택들을 많이 방문해 보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탓인지 '쇠락'이라는 느낌만 많이 받았던 터입니다.
역시 사람의 손길이 무섭습니다.
별채인 애일당은 풍수지리적으로 아주 좋은 곳이랍니다.
애일당에 앉아 있자니 서늘하고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도 했습니다.
여름에는 와서 자고 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음에 꼭 다시 올 겁니다.
이 곳에서 며칠 머물 수 있으면 품격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집에서는 방외지사(조용헌 저)에 소개된 강기욱님이 처사생활을 하시고 계십니다.
방외지사에 소개된 분들이 대부분 무림의 장문인 같은 이상한 일을 하시는 데,
유독 이 분만은 백수, 그것도 온 가족이 함께 백수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어 강렬한 기억을 갖고 있었던 참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16세기는 유난히 많은 인물들이 배출된 시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고봉 기대승을 최고봉이라고 꼽으시더군요.
조선 성리학의 논리적인 체계를 세우신 분이랍니다.
저로서는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낯선 이름인데 말이죠.
동양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대략적인 계보를 말씀해 주셔서 아주 반가웠습니다.
성리학은 유.불.선이 통합된 학문이라고 합니다.
뭐든지 짬뽕시켜놓으면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을 고봉 기대승이 하셨나 봅니다.
이렇게 의미있는 사람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요?
아마도 2인자였기 때문인가 봅니다.
어쨌거나 퇴계 이황이 고봉과의 사단칠정 논쟁을 통해 고봉의 논리적인 체계를 받아들여
자신의 학문을 재구성하였다고 하니 무의미한 2인자는 아니었으리라 봅니다.
굳이 자신의 이름을 걸 필요가 있겠습니까?
강기욱 처사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비주류 1%가 주류 99%를 견인한다고.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주류를 지향하는 우리네 삶 역시 거대한 매트릭스에서
미리 프로그래밍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푸코의 글을 읽으며 사회시스템의 강고함에 몸서리쳤던 기억도 되살아났구요.
이론으로는 사람을 위해 사회를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사회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형국입니다.
점점 더 강고해지고, 점점 더 단일화됩니다.
요즘에는 사회 매커니즘이 자본을 매개로 더욱 더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아니다 싶으면서도 기존 시스템에 편입되어 허덕이고 있습니다.
벗어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라는 것을 강 처사님이 보여 주십니다.
자본을 매개로 작동하는 시스템에서는 자본의 이득을 누리는 것만 포기하면
그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라구요.
사실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다'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가 정답일 터입니다.
필요한 만큼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그런 면에서 물소리님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연금을 너무 많이 받아 주체할 수 없다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시는
'밥사'를 자처하십니다. 이번 기행에서도 점심도 사주시고 야참도 사주셨습니다.
아마 저라면 아무리 연금을 많이 받아도 부족하다, 부족하다 할 겁니다.
연금에 맞게, 아니 그 이상으로 경제규모를 크게 늘려놓고서는 말이죠.
생활에 필요한 경제 규모를 최대한 줄일 것. 이번 기행에서 받은 저의 숙제입니다.
세심원 변동해님도 방외지사이십니다.
이 분의 모토는 '퍼주자'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경관 좋은 곳에 자신을 위한 별장 지어놓고 사는 사람은 많지만,
변동해님은 그 별장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지으셨습니다.
본인은 장성읍내 아파트에 사시면서, 관리를 위해서만 하루에 한 두 번 다녀 가신답니다.
세심원은 편백나무(피톤치트가 가장 많이 나오는 나무랍니다. 편백나무를 이용한
인테리어는 웰빙중의 웰빙으로 꼽혀 욕조 하나에만도 천만원대입니다)로 지어진
전원주택이구요. 편백나무 밑에는 숯과 소금이 엄청 많이 깔려 있답니다.
세심원에 들어가면 편백나무 향기, 숯향기가 기분좋게 코에 감깁니다.
먹거리도 항상 준비해 놓으시고, 이부자리도 항상 비치해 놓으신답니다.
와서 편하게 쉬면서 마음을 씻고 가라구요.
요즘은 이용하는 사람이 제법 많아져서 미리 예약을 하여야 한답니다.
이용요금은 따로 받지 않지만, 예의상 누린 혜택에 상응하는 금액의 후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세심원이 오래 유지될 수 있을 테니까요.
길에 서면 누구나 다 스승이다.
삶의 스승을 만난 소중한 여행길이었습니다.
일요일 아침, 비인 듯, 안개인 듯한 가랑비를 맞으며
세심원에서 문수사까지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나무들에게서 간질이는 소리가 나더군요.
봄이구, 아침이구, 비가 와서 나무들이 좀이 쑤셔하는 것 같았습니다.
덩달아 저두 간질간질한 느낌에, 이 느낌을 어떻게 발산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습니다.
역시 '봄'은 여자의 계절인가 봅니다^*^.
이번 기행의 백미는 고봉 기대승 고택이었습니다.
단아하면서 품격이 있는, 고졸한 분위기의 이조 백자 냄새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이런저런 고택들을 많이 방문해 보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탓인지 '쇠락'이라는 느낌만 많이 받았던 터입니다.
역시 사람의 손길이 무섭습니다.
별채인 애일당은 풍수지리적으로 아주 좋은 곳이랍니다.
애일당에 앉아 있자니 서늘하고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듯도 했습니다.
여름에는 와서 자고 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음에 꼭 다시 올 겁니다.
이 곳에서 며칠 머물 수 있으면 품격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집에서는 방외지사(조용헌 저)에 소개된 강기욱님이 처사생활을 하시고 계십니다.
방외지사에 소개된 분들이 대부분 무림의 장문인 같은 이상한 일을 하시는 데,
유독 이 분만은 백수, 그것도 온 가족이 함께 백수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싶어 강렬한 기억을 갖고 있었던 참입니다.
우리 역사에서 16세기는 유난히 많은 인물들이 배출된 시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고봉 기대승을 최고봉이라고 꼽으시더군요.
조선 성리학의 논리적인 체계를 세우신 분이랍니다.
저로서는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낯선 이름인데 말이죠.
동양철학에 관심을 가져야 겠다 생각은 하면서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
대략적인 계보를 말씀해 주셔서 아주 반가웠습니다.
성리학은 유.불.선이 통합된 학문이라고 합니다.
뭐든지 짬뽕시켜놓으면 논리적 완결성을 갖추기가 쉽지 않은데,
그것을 고봉 기대승이 하셨나 봅니다.
이렇게 의미있는 사람을 우리는 왜 몰랐을까요?
아마도 2인자였기 때문인가 봅니다.
어쨌거나 퇴계 이황이 고봉과의 사단칠정 논쟁을 통해 고봉의 논리적인 체계를 받아들여
자신의 학문을 재구성하였다고 하니 무의미한 2인자는 아니었으리라 봅니다.
굳이 자신의 이름을 걸 필요가 있겠습니까?
강기욱 처사님이 말씀하시더군요.
비주류 1%가 주류 99%를 견인한다고.
'매트릭스'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주류를 지향하는 우리네 삶 역시 거대한 매트릭스에서
미리 프로그래밍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푸코의 글을 읽으며 사회시스템의 강고함에 몸서리쳤던 기억도 되살아났구요.
이론으로는 사람을 위해 사회를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사회를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형국입니다.
점점 더 강고해지고, 점점 더 단일화됩니다.
요즘에는 사회 매커니즘이 자본을 매개로 더욱 더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아니다 싶으면서도 기존 시스템에 편입되어 허덕이고 있습니다.
벗어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라는 것을 강 처사님이 보여 주십니다.
자본을 매개로 작동하는 시스템에서는 자본의 이득을 누리는 것만 포기하면
그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라구요.
사실 '돈은 많을수록 좋은 거다'가 아니라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가 정답일 터입니다.
필요한 만큼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겠습니다만...
그런 면에서 물소리님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연금을 너무 많이 받아 주체할 수 없다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밥을 사주시는
'밥사'를 자처하십니다. 이번 기행에서도 점심도 사주시고 야참도 사주셨습니다.
아마 저라면 아무리 연금을 많이 받아도 부족하다, 부족하다 할 겁니다.
연금에 맞게, 아니 그 이상으로 경제규모를 크게 늘려놓고서는 말이죠.
생활에 필요한 경제 규모를 최대한 줄일 것. 이번 기행에서 받은 저의 숙제입니다.
세심원 변동해님도 방외지사이십니다.
이 분의 모토는 '퍼주자'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감히 흉내조차 낼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경관 좋은 곳에 자신을 위한 별장 지어놓고 사는 사람은 많지만,
변동해님은 그 별장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 지으셨습니다.
본인은 장성읍내 아파트에 사시면서, 관리를 위해서만 하루에 한 두 번 다녀 가신답니다.
세심원은 편백나무(피톤치트가 가장 많이 나오는 나무랍니다. 편백나무를 이용한
인테리어는 웰빙중의 웰빙으로 꼽혀 욕조 하나에만도 천만원대입니다)로 지어진
전원주택이구요. 편백나무 밑에는 숯과 소금이 엄청 많이 깔려 있답니다.
세심원에 들어가면 편백나무 향기, 숯향기가 기분좋게 코에 감깁니다.
먹거리도 항상 준비해 놓으시고, 이부자리도 항상 비치해 놓으신답니다.
와서 편하게 쉬면서 마음을 씻고 가라구요.
요즘은 이용하는 사람이 제법 많아져서 미리 예약을 하여야 한답니다.
이용요금은 따로 받지 않지만, 예의상 누린 혜택에 상응하는 금액의 후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세심원이 오래 유지될 수 있을 테니까요.
길에 서면 누구나 다 스승이다.
삶의 스승을 만난 소중한 여행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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