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 서보다

망월동에 다녀오다

sunny 존재 자체가 복음 2005. 10. 5. 10:59
 

어제 광주에 출장갔다가 망월동에 들렀습니다. 관제 성지로 꾸며놓은 것이 좀 아쉽긴 했지만, 과거 우리 역사 어느 시점에서도 민중들의 항거를 사후적으로라도 이렇게 치장한 적이 없었지...싶었습니다. 공원 벽화에 동학농민전쟁, 광주학생운동, 3.1운동, 4.19의거를 부조해 놓았던 데, 여기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野에 머물러 있쟎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곳도 한 군데 정도는 있어야겠지요.


그래도 아쉽다 싶은 건, 너무 경건.엄숙 그 자체라 편안하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라는 거였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부채감이 그만큼 크다는 반증이긴 하겠지만, 내가 거기 누워있는 당사자라면, 후손들이 편안하게 나에게 와주기를 바랄 것 같습니다. 나의 목표도 그것이었쟎아요? 그 과정은 비장했지만요.


생년월은 다 다른 데, 사년월은 동일한 수많은 무덤앞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는 게 시들하다 싶은 데,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일을 외면하지 않았던 혹은 피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누워있는 곳을 보며 간만에 반성이라는 것을 해보았습니다.


당분간은 한 세상 열심히 살다 간 사람들의 묘지를 순례할 작정입니다. 어떤 생을 살았는지 불문하고, 주인 있는 무덤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여름 휴가때 조상묘를 방문했을 때(올 휴가의 주제는 '아빠의 뿌리를 찾아서'였습니다. 작년 이순신 유적지 답사의 속편격이었습니다), 아들 얻기 위해 3번 장가한 증조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사람은 시대를 산다라는 생각에 숙연했었습니다.


여행의 여파 탓인지, 컴에 붙여놓은 시가 달리 보입니다.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자오


윤동주님의 나무라는 시인데요.(수용미학을 적극 주장하는 바이긴 하지만,이야기 전개상 저의 감상포인트를 덧붙이면 세상사 내 맘 먹기에 달렸다입니다^^) 그동안은 이 시 보며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세파에 흔들리지 말자를 다짐했는데, 어제의 여파탓인지, 흔들려 보자... 아니 흔들어 보자가 맞겠네요... 평온하기만 해서 시들한 세상, 나만이라도 춤추고 그리고 바람을 느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게 맞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모르는 것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 현명해진다는 증거라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데, 아마도 저는 점점 현명해지고 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