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감각을 이용하여 즐기다

[영화]비키퍼_스피로, 죽어가며 세상을 향해 외치다

sunny 존재 자체가 복음 2005. 10. 9. 11:45

사랑의 침묵이라고 하던 데, 글쎄요? 사랑이 과연 뭔가요? 원하는 대로 가져야 하는 걸까요? 가져봤기 때문에 더 이상 세상을 살 수 없었던 사람의 이야기가 이 영화에서 전개됩니다.

 

스피로는 사회가 자기에게 부과한 의무들을 어느 정도 수행했다고 판단하고 가업이었던, 그러나 자기는 계승하지 않았던 꿀벌치기를 하고자 그동안 익숙했던 모든 것, 가족, 직업 등과 이별을 합니다. 그러나 그 비키퍼의 세계는 본인의 추억속에 있던 것과는 너무 다릅니다. 스피로는 축제같았다고 생각 혹은 추억해 왔던 비키퍼 세계의 스산함, 황량함에 당혹스러워합니다. 그러다가 한 소녀를 만나게 됩니다.(이런이런, 소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군요...) 소녀는 계속해서 스피로를 자극합니다. 스피로가 자는 바로 옆 침대에서 남자친구와 정사를 가지면서 옆 침대의 스피로를 흘낏흘낏 살펴보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사랑 역시 세상사인가요? 내가 관심 없을 때는 모든 것 다 줄 듯 하다가, 망성임끝에 그것을 덥석 물으면 달아나 버립니다. 소녀와 스피로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소녀는 계속 유혹하고, 스피로는 무시합니다. 결국 스피로가 두 손 듭니다. 다시 눈 뜬 욕정을 안전하게 통제하고자 부인을 찾아갑니다만, 과거에는 예뻤지만 지금은 늙은 부인은 더 이상 욕정의 대상이 아닙니다.(이 영화에서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을 데리러 왔어라고 스피로가 이야기할 때, 안나가 흐느낀 까닭은 무언가요? 이것을 보면서 안나가 거부하는 걸로 생각했었는 데, 밝은 데서 당신을 보고 싶어라는 대사로 미루어 짐작컨대 스피로가 거부한 걸로 해석을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갑작스레 변화된 스피로의 태도의 심리적 이면을 안나가 알아 차렸던 걸까요? 그래서 더 서글펐던 걸까요?)

 

이제 스피로가 갈 길은 하나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죠, 당연히. 그 끝이 파멸이라고 해두요. 어두운 바깥에서 스피로는 망설이고 망설입니다. 어느 순간 화면에서 사라졌던 트럭은 속도를 높이더니 소녀가 있던 카페(아주 밝습니다)를 들이 받습니다. 소녀도 스피로의 변화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스피로의 트럭을 타고 둘은 지도의 끝으로 갑니다. 스피로는 수긍은 되지만, 아름다와 보이지는 않은 욕망에 기꺼이 몸을 던집니다. 이번에는 소녀가 거부합니다. 땅끝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땅끝마을임을 바다를 보여주며 확인시킨 후, 바다옆에 마을을 보여주는 카메라의 시선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땅끝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갈 수 없는 데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습니다. 특히 전체적인 화면에 비해 이 부분을 밝게 처리했습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사람은 비로소 행복한 걸까요? 그러면 이 영화의 결말은 비극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에 도착한 스피로는 새로 생겨나기 시작한 욕망으로 가득차 있으니까요.

스피로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에서 스피로와 소녀는 구체적이 됩니다. 스피로는 과거, 소녀는 현재 됩니다. 과거가 현재를 잡을 수 있을까요? 둘은 극장에서 머물게 됩니다. 극장이 뭡니까? 환상을 통해 사람들을 위무해주는 공간입니다. 극장의 무대 위에서(제가 봤던 씨네큐브도 화면 아래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더군요^^) 소녀와 스피로는 밀고 당기며, 열정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제 위무의 시간은 끝났습니다. 이제 나를 가게 해줘요라는 말을 남기고 소녀는 떠나갑니다. 스피로는 이제 과거속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현재를 살 수도 없습니다. 벌통을 늘어놓은 채 망연히 앉아있던 스피로는 어느 순간 벌통을 다 엎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쓰러집니다. 쓰러진 스피로 주위를 벌들이 맴돕니다. 그냥 힘없이 죽을 줄 알았던 스피로의 손이 움직입니다. 주먹을 쥐고는 땅을 두드려 모르스 신호를 보냅니다. 그 장면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스피로가 보낸 신호는 어떤 내용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