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들의 시대
붙박이에서 떠돌이로
by 고종석
태초에 개인이 있었다. 개인은 하느님과 함께 있었고, 개인이 하느님이었다. 최후에 개인이 남았다. 멋쟁이 이론가들이 ‘노마드(nomade, 유목민)’라고 부르는 그 떠돌이들은 휴대폰과 함께 있을 것이고, 노트북을 들고 지구의 이 도시 저 마을을 누빌 것이다. 바로 이 개인은 21세기 인류의 이름이다.
태초에 개인이 있었다고? 그렇다. 이 패러디는 요한 복음의 거룩함을 조롱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개인주의는 근대의 산물이 아니다. 인류학자 루이 뒤몽(Louis Dumont)에 따르면, 최초의 개인주의자들은 고대 인도의 탈속적 힌두교도들이나 지중해 주위의 원시 기독교도들이었다. 고대의 힌두교도들이 카스트 제도에 무심한 채 자신들의 내면적 가치에 집착했듯, 원시 기독교도들도 세속의 위계 질서 바깥에서 신과 개별적으로 만나기를 바랐다. 물론 고대의 이런 ‘세계-바깥의-개인’은 근대의 개인주의가 상정하고 있는 개인은 아니다. 그러나 근대 초기에 캘비니즘을 통해서 확립된 ‘세계 내적 개인주의’의 씨앗을 고대의 개인주의자들이 뿌린 것은 확실하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도 그의 마지막 저서인『성의 역사』제3권『자기에 대한 배려』(1984)에서 개인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고대 지중해 세계로 끌어올렸다. 그가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자기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 첫 번째 거장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는 개인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관심을 압축한다. 그를 포함한 많은 고대 그리스인들의 윤리는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적 윤리였다. 그 윤리 속에서 한 개인의 바람직한 삶은 미와 선을 융합시킨 예술 작품에 비유되었다.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한 자발적 자기 함양이 억압적 도덕의 금제를 대치했다.
개인들이 돌아옥 있다. 복거일이라는 이름으로, 또는 서갑숙이라는 이름으로. 복거일의『소수를 위한 변명』(1997)과 서갑숙의『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1999)는 한국 개인주의의 이론과 실천을 대표한다. 20세기의 인류사에 새겨진 가장 커다란 상처들이 전체주의의 칼자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개인들의 부활은 경하할 만한 일이다. 20세기는 인류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정치 체제로서의 전체주의를 경험한 시대다.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는 한 사회에서 개인의 공간을 완전히 박탈했다. 그것이 그 이전의 독재체제로부터 20세기의 전체주의를 구별시키는 점이다.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나 크메르 루주의 인민 학살 같은 것은 한 사람에게서 개인의 얼굴을 지워버리고 집단의 표상만을 읽으려했던 전체주의의 필연적 귀결이다.
개인의 부활은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를 뜻하는가?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1968년 5월의 프랑스 학생 혁명은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저항이었다. 그 해 5월에 파리 거리를 누비며 ‘금지를 금지하라’고 외쳤던 ‘붉은 아이들’은 체제라는 이름의 전체에 대항해서 자아와 개인성을 긍정했던 사람들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또 한 사람의 프랑스인에게 귀를 기울여보자. 사회학자 폴 요네(Paul Yonnet)는『게임, 유행, 대중』(1985)이라는 책에서 대중화, 개인주의, 탈정치화를 현대 사회의 본질적 특성으로 꼽고, 미래의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이 세 요소의 굳건한 결합이라고 처방했다. 물론 탈정치화한 대중이 전체주의적 성향을 지닌 선동가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동원될 때, 민주주의의 바탕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 세계의 대중은 개인적 선택에 민감한 개인주의적 대중이다. 그들은 자유로부터 도피해서 파시즘으로 투항하는 수동적 대중이 아니라,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상품의 소비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실천하는 능동적 대중일 것이다.
19세기 후반 이래 이런 개인주의는 위대한 예술가들에 의해서 미학적 모더니즘의 형태로 실천됐다. 예컨대 보들레르와 랭보는 고전적 작시법에서 시를 해방시켰고, 세잔과 피카소는 원근법에서 회화를 해방시켰다. 또, 스트라빈스키와 쇤베르크는 조성이라는 성가신 굴레에서 음악을 해방시켰다. 그들의 얼굴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에 홀렸다는 나르시스의 얼굴이다. 이런 개인주의 또는 일종의 쾌락주의가 소수의 예술가나 지식인이 아닌 대중에 의해 실천되는 사회가 21세기일 것이다. 그때는 모두가 나르시스가 되는 것이다. 모두 서갑숙이 되는 것이다.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에서 서갑숙이 실천하고 있는 것은 페미니즘이나 성 해방 운동이 아니다. 그가 수행하고 있는 것은 나르시시즘이고 개인주의다. 그는 자신의 몸에 반했고, 자신의 사랑에 반했다. 그런 반함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그의 책이다. 그는 자신의 책을 통해서 풍속의 감시자를 비웃으며 개인주의를 실천한다. 그는 21세기형 인간, 나르시스적 인간이다. 그런 탈근대적 나르시스를 심리적 인간(호모 프리콜로기쿠스)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부유하는 듯한 이 호모 프시콜로기쿠스는 자유를 열망하는 민주주의적 인간(호모 데모크라티쿠스)이기도 하다.
전체에서 해방된 개인은 원자화된 개인, 탈사회화된 개인일까? 그래서 그는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게 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주의는 고립주의가 아니다. 그래서 개인주의자는 은자(隱者)가 아니다. 공심(公心)의 결여나 비사교성은 개인주의와 무관하다. 개인주의자는 개인주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다른 개인과 연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현대의 노마드들이 들고 다니는 휴대폰과 노트북은 그들이 지구 문명의 망속에 긴밀히 연결돼 있다는 표지다. 개인주의는 또 이기주의와도 무관하다. 개인주의는 한 사람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는 고전적 자유관의 심리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고 있고, 다가오는 세기에 완성해야 할 혁명은 개인주의 혁명이다. 그 혁명은 조용하지만 근본적인 혁명일 것이다. 이 혁명이 만들어내고 있는 개인주의는 일상적 삶의 체계적 개성화(또는 프라이버시화)를 유연하고 느슨한 사회화와 묶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출할 것이다. 그것은 풍속을 포함한 문화 전반의 소프트화를 동반하는, 쾌락주의적이고 너그러운 새로운 자본주의와 어울린다. 그 혁명의 주체는 전체가 아니라 개인이고, 수동적인 붙박이들이 아니라 능동적인 떠돌이들일 것이다.
전체주의와 개인주의
by 고종석
전체주의(holism)는 전체가 그것을 이루는 부분들과 독립적인 실체이고, 그 부분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세계관이다. 이 용어는 때로 사회적 전체가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들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를 뜻하기도 한다. 그런 세계관이 정치 제도에 극단적으로 구현됐을 때 이를 특별히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고 부른다.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가 그 예다. 이런 의미의 전체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파시스트들이다. 무솔리니는 자신이 구상하고 건설했던 이탈리아 국가를 전체주의 국가(Stato totalitario)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그 발명자들에게는 긍정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전체주의에 상대되는 말은 개체주의 또는 개인주의(individualism)다. 개인주의는 전체주의와 달리 특정한 주체의 관점을 옹호하고 드높인다. 개인주의자들이 보기에, 개인은 고려해야 할 유일한 실체이고 모든 사회적 구성이나 철학적 체계의 최종 목표다.
개인주의자들은 인간의 문제들을 집단의 틀 안에서 사고하기를 거부한다. 그런데 개인은 일반화된 추상물이 아니라 정의 그대로 구체적인 개별자들이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것은 개인주의라기 보다는 개인주의들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주의적 개인은 개인주의에 대한 각자의 개념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에는 개인주의자들의 수만큼이나 많은 개인주의가 존재할 수 있는 셈이다.
개인주의는 크게 존 로크(John Locke)에서 발원해 뒷날 자유주의를 낳은 부르주아적 개인주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나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로 대표되는 무정부주의적 개인주의, 키에르케고르(So/ren Aabye Kierkegaard)나 니체(Friedrich Nietzsche)로 대표되는 귀족주의적 개인주의 따위로 나눌 수 있다. 그 개인주의들 사이에는 다른 점이 많이 있다. 예컨대 막스 슈티르너는 이기주의라는 말을 긍정적 맥락에서 사용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이기주의자다. 이타주의자란 타인의 쾌락을 통해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또 니체 같은 귀족주의적 개인주의자들은 가장 뛰어난 사람들, 요컨대 자신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런 다양한 개인주의들은 개인을 전체보다 중시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와 ‘그들’
순수와 순결을 넘어서
by 고종석
사람은 누구나 친숙한 것 앞에서는 편하고, 낯선 것 앞에서는 불편하다. 그러나 우리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낯선 것들 앞의 그 불편함을 존재의 조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배제의 정치학을 통해서 해소하려고 할 때 세상사의 잠재적 갈등은 더욱 뒤엉키고 자칫 분쟁으로 치닫기 쉽다. 우리와 다른(다르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난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 유행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경남 출신의 후보가 당선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 말을 처음 발설한 경북 출신의 정치인에게 경북과 경남을 아우른 영남 지방의 주민 집단과 그 지역 출신의 정치인들은 ‘우리’였고, 그 이외의 지역, 특히 호남 지방의 주민 집단과 그 지역 출신 정치인들은 ‘남’ 곧 ‘그들’이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그토록 큰 힘을 지닐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이 한국 사회 지역주의의 심리적 자양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소 비대칭적이기는 하지만, 호남 사람들이 영남 사람들을 대하는 데서도 작동하는 심리적 기제다. 실은 지역주의만이 아니다. ‘우리’와 ‘그들’의 양분법은 학연이나 혈연을 포함한 무수한 ‘줄’로 한국 사회를 꽁꽁 옭아매고 있는 각종 연고주의의 심리적 자양분이다. “줄이 없으면 되는 일이 없고 줄이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말을 우리는 흔히 듣는데, 그것은 연고주의가 우리 사회에 그만큼 깊게 뿌리내려 있다는 뜻이겠다. 그렇다면 그 연고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우리/그들’ 이데올로기는 한국적 비합리주의의 바탕인 셈이다.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양분법은 당연히 나라 바깥의 사람들이나 문화를 바라보는 데서도 작동한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겪은 고난은 이미 악명높은 것이 되었다 ‘우리’는 ‘그들’을 깔보고 학대하고 착취한다. ‘그들’은 앞으로 점점 더 ‘우리’ 사이에 들어올 텐데 말이다. 우리는 흔히 일본 사회에서 한국인들이 받는 차별에 대해 분개한다. 그리고 유럽이나 미국 사회에서 제3세계 출신 사람들이 당하는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사회가 충분히 열려 있지 않은 사회라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이나 미국도 충분히 열러 있는 사회는 아니다. 그러면 한국은 어떤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학대에서도 드러나듯, 한국 역시 닫힌 사회다. 그리고 그 닫힘의 정도는 서양은 물론이고 일본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다. 한국은 중국의 인접국이면서도 화교 커뮤니티가 뿌리내리지 못한 희귀한 나라이고, 혼혈아가 정상적으로 자라나게 내벼려 두지 않는 폭력적 사회다. 요컨대 한국은 강한 인종주의 사회다. 우리는 우리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민족만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는 우리보다 경제적․문화적․정치적 여건이 낫다고 생각되는 제1세계 사람들도 차별한다. 백인 며느리를 들인다거나, 일본인 사위를 맞는 데에는 아직도 커다란 결단이 요구된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은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도 분쟁의 점화 장치로 작용하고 있는 심리적 기제다.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데 적용되는 가장 흔한 기준은 민족이나 인종이지만, 그것들이 기준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그들’의 이분법은 이념이나 종교의 차원에서도 작동해 흔히 분쟁의 땔감이 된다. 한국 전쟁에서는 ‘우리’와 ‘그들’을 나누는 기준이 정치적 이념이었고, 북아일랜드 분쟁에서는 종교였으며, 체첸이나 코소보에서는 인종 또는 민족이었다. 또 그 기준이나 차원들은 곧잘 시루떡처럼 중첩된다. 북아일랜드의 종교 분쟁은 앵글로색슨족과 켈트족 사이의 민족 분쟁 위에 얹혀 있고, 코소보의 민족 분규도 세르비아 정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종교 분쟁 위에 포개져 있다. 물론 이 모든 분쟁의 배후에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 좀더 커다란 몫에 대한 욕심이 파닥거리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만나는 방식에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있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와 ‘그들’사이의 차이는 없앨 수도 없고 없앨 필요도 없다는 태도다. 이것은 특수주의 또는 문화적 상대주의라고 부를만한 태도다. 두 번째는 ‘우리’와 ‘그들’ 사이의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만큼 피상적인 것이며, 인간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태도가 있을 수 있다. 이른바 보편주의적 태도다.
그러나 이 두 태도 모두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에 대한 적절한 처방이 되지 못한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흔히 휴머니즘과 한 묶음으로 거론되는 보편주의가 그 처방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보편주의는 그 실천적 국면에서 모든 것을 획일화함으로써 실제로는 자기 중심주의로 귀착하기 쉽다. 특히 유럽인들이 내세웠던 보편주의는 흔히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당의(糖衣)로 작용했다. 유럽의 보편주의자에게는 자신들의 기준만이 보편적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그 보편적 기준에 따라 ‘원시적’이거나 ‘야만적’인 세상을 계몽하고 교화하는 이른바 ‘백인의 짐(White man's burden)’을 지고자 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가치가 가치 그 자체였던 것이다. 자신에게 낯선 것을 보편에서 제외시키는 이 자기중심주의는 휴머니즘의 탈을 쓰고 야만인들을 교화하기 위한 식민주의로 발전한다. 또 보편주의는 과학주의와 등을 맞대고 있다. 과학주의란 과학적 지식이 보편적 도덕을 정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다. 이 과학주의에 따르면 모든 문화적 차이는 이성의 제단 앞에서 말살돼야 한다. 그러나 과학주의는, 부당하게도, 흔히 사실을 가치와 동일시한다. 20세기의 가장 흉칙한 체제였던 나치 체제와 스탈린 체제는 이런 과학주의에 바탕을 두고 구축되었다. 한쪽에선 우생학이 과학이었고, 다른 쪽에선 역사적 유물론이 과학이었다. 과학주의에서 전체주의까지는 그리 먼 걸음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적 상대주의가 ‘우리’와 ‘그들’을 화해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상대주의는 인종적․문화적 집단이나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지나치게 부각시킴으로써, 일종의 신인종주의로 귀결한다. 상대주의자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은 다양한 문화적 차이, 곧 사람의 다양한 정체성에다가 서열화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때 ‘차이의 권리’는 교묘하게도 ‘권리의 차이’로 전복된다. 이것은 ‘선의의’ 식민주의자들이 지닌 순진한 보편주의보다 더 위험하다. 인류의 단일성과 가치의 보편성을 부정하며 차이를 특권화함으로써, 그들은 자아로의 퇴각과 소통의 부재와 타인의 배제를 부추긴다. 그러니까 ‘우리’와 ‘그들’을 화해시키기 위해서는 상대주의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대주의자들처럼 보편적 가치들을 포기하는 순간, 화해의 기본 원리인 톨레랑스나 상호 존중이 존재 근거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을 대하는 바람직한 지점은 보편주의와 상대주의의 중간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보편적 가치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구체라는 것의 끈을 놓지 않는 태도다. 결정론과 추상성과 자기 중심주의에서 해방된 이런 보편주의를 열린 보편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열린 보편주의는 인간을 문화로도 생물로도 환원시키지 않고, 거기서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의지를 읽는다.
그러나 이런 이론적 곡예에서 벗어나 ‘그들’앞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실천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태도는 순수 또는 순결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는 것일 것이다. 순수한 민족(피), 순결한 이념, 순수한 교리 따위에 대한 집착은 흔히 광신자를 낳고, 광신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단과 불순분자와 인민의 적과 민족의 원수를 발견해서 그들에게 성전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불순함에 대한 옹호가 필요한 것은 그래서다. 불순함을 옹호하는 정신은 너그러움을 옹호하고 실천하는 정신이다. 그것은 나와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서 살겠다는 정신이고, ‘우리’ 속에도 수많은 ‘그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정신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기의 시대 정신이다.
언어와 위계(位階)
경어체계의 유연화(柔軟化)
by 고종석
존재는 의식을 구속하고 언어는 의식을 반영한다. 그러니까 존재는 의식을 매개로 언어를 구속한다. 그러나 모든 구속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상호구속이다. 존재가 언어를 구속하는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언어도 존재를 구속한다. 둘 사이의 관계는 일종의 되먹임(feedback) 관계다. 존재는 언어를 구속하고, 언어는 다시 존재를 구속한다. 말을 바꾸면, 사회 구조는 언어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언어는 사회 구조에서 자신의 메아리를 듣는다. 요컨대 언어와 사회는 영향을 주고받는다.
언어가 사회와 주고받는 영향의 예로서 경어체계와 신분 질서의 관련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연 언어 가운데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복잡하고 정교한 경어체계를 지닌 한국어는 이러한 관련을 엿보는 데 적절한 언어다. 한국어의 경어체계는 섬세하다. 15세기의 한글문헌을 통해 짐작되는 중세 한국어의 경어체계는 지금보다 더 섬세하지만, 현대 한국어도 웬만한 외국인 학습자들의 기를 꺾어놓을 정도로 경어 체계가 섬세하다. 외국인의 입에서 나오는 한국어가 자주 부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 억양 때문이겠지만, 부적절한 존대법의 사용도 흔히 그 부자연스러움의 일부를 이룬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들도 때로 실수를 할만큼 한국어의 경어체계는 정교하다.
한국어 경어체계의 복잡함이 도드라지게 드러나는 것은 용언의 종결형에서다. 예컨대 동사 ‘하다’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그리고 언급되는 대상 사이의 위계에 따라 명령형에서는 ‘하라/해라, 해, 하게, 하시게, 하세요(하시오), 하십시오, 하소서, 하옵소서, 하시옵소서’ 따위로 변하고, 서술형에서는 ‘한다, 해요, 하세요, 합니다, 하십니다, 하옵니다, 하시옵니다, 하나이다, 하시나이다, 하시옵나이다’ 따위로 변하며, 의문형에서는 ‘하니, 해, 해요, 하세요, 합니까, 하십니까, 하옵니까, 하시옵니까, 하시나이까, 하시옵나이까’ 따위로 변한다. 물론 ‘하시옵소서, 하나이다, 하시나이까’ 같은 하소서체의 극존칭은 현대어의 구어에서는 사용되지 않지만, 문어나 사극의 대사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한국어의 경어체계가 이렇게 어미변화로만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단어들은 거기 대응하는 높임말을 따로 지니고 있다. 예컨대 ‘먹다’는 ‘잡수다/잡수시다’를, ‘자다’는 ‘주무시다’를, ‘주다’는 ‘드리다’를, ‘묻다’는 ‘여쭙다’를, ‘있다’는 ‘계시다’를, ‘밥’은 ‘진지’를, ‘말’은 ‘말씀’을 지니고 있다. 주격조사 ‘이/가’는 높으신 어른 다음에는 ‘께서’로 변하고, 여격조사 ‘에게’도 높으신 어른 다음에는 ‘께’로 변한다. 그런데 이 관계가 늘 똑같은 것은 아니다. 예컨대 ‘잡수시다’나 ‘주무시다’나 ‘계시다’는 그 행위의 주체를 높이는 것이지만, ‘여쭙다’나 ‘드리다’는 그 행위의 객체를 높이는 것이다. 즉 여쭙거나 드리는 행위의 주체를 낮추는 것이다. 한국어의 경어체계 즉 공대법에는 존경법과 겸손법이 섞여 있는 것이다.
존경법과 겸손법을 겸하는 말도 있다. 예컨대 ‘말씀’이 그렇다. ‘말씀’은 맥락에 따라 그것을 발하는 사람을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하는 상반된 의미 기능을 지닌다. 예컨대 “선생님 말씀 잘 들어!”에서 ‘말씀’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즉 앞의 ‘말씀’은 ‘말’의 높임말이고 뒤의 ‘말씀’은 ‘말’의 겸사말이다. 경어체계 안에 말을 듣는 상대방을 높이는 법, 말을 하는 자신을 낮추는 법, 문장의 주어나 객어(목적어)를 높이는 법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그것들이 섬세하게 서로 결합하는 경우도 있어서 한국어는 자잘한 위계질서의 뉘앙스들로 가득 차 있다.
한국어에서 2인칭 대명사가 손아랫사람이나 허물없는 친구에게 말을 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학교문법에서의 설명과는 상관없이, 한국어의 2인칭 대명사는 구어의 수준에서는 실질적으로 ‘너(/너희/너희들)’ 하나뿐이다. 약간의 높임을 지닌 대명사로 ‘당신’이 있기는 하지만, 이 말은 중년 이상의 부부 사이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쓰일 뿐이다. 학교문법의 설명을 믿고 아무에게나 ‘당신’이라고 했다가는 싸움 나기 십상이다. 한국어에서 존칭을 사용해야 할 대상에게는 2인칭 대명사의 자리를 제로(zero) 형태로 비워두거나, 연령적․가족적․직업적․신분적 위계를 표시하는 명사(선배님, 아버님, 국장님, 선생님) 또는 상대방의 이름(숙자씨)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에 그 이름 뒤에 붙이는 접미사 ‘씨’가 점차 예삿말의 뉘앙스를 띠게 돼, 높여야 할 자리에서는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손윗사람을 면전에서 아무개 씨라고 지칭하면 상대방의 얼굴빛이 이내 어색해질 것이다.
한 언어의 경어체계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짜임새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은 많지만 그 나라들의 민주주의의 정도가 들쑥날쑥인 것이 그 증거다. 그러나 그 둘 사이에 적어도 느슨한 관계가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언어와 사회가 서로를 구속하는 것이라면 한국어의 복잡한 경어체계와 한국 사회의 비민주적 특성 사이에는 일정한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한국어의 이 섬세한 경어체계는 그것이 태어난 시기의 엄격한 사회적 위계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겠지만,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경어체계가 다시 위계 질서를 공고히 하는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 실상 한국어는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과 자신 사이의 위계를 설정하기 전에는 단 한마디도 입밖에 낼 수 없는 언어다. 언어로 표현되는 그 위계 질서를 우리는 다시 그 언어를 통해 내면화한다. 경어를 썼느냐 반말을 썼느냐가 흔히 사람들 사이의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것이 그 증거다. 경어법은 연령의 위계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신분의 위계를 드러내고, 그 신분의 위계는 그것을 드러내는 경어법에 의해 다시 강화된다. 그렇다면 복잡한 경어체계를 지닌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을 지닌 셈이다. 경어체계를 제거한 한국어를 상상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진전하는 것에 맞추어 한국어의 경어체계가 지금보다 덜 복잡해질 가능성은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진전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경어법에 서툰 젊은 세대가 반드시 계도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예절은 사회라는 체계를 유지시키는 버팀목이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번쇄할 때는 사회를 옭아매 생기를 빼앗는 오랏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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